이번에는 제주올레 1코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1코스는 원래 계획에 없던 코스였다. 이 날은 빛의 벙커를 관람했던 날 오후였다. 어디에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가까운 해변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생각에 검색하던 중 광치기해변이 꽤 가까운 거리임을 알았다. 

그래서 광치기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마침 광치기해변을 지나는 올레길이 있길래 그 코스를 걸어보게 되었다.

 

 

제주올레1코스 광치기해변

광치기해변은 성산읍에 있는데, 성산일출봉이 아주아주 잘보인다. 아니, 아주아주 커다랗게 보인다. ㅎㅎ

광치기해변에서는 어디에서건 성산일출봉이 잘보였는데, 해변을 따라 걸을 수록 성산일출봉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왠지 멀게 느껴졌던 성산일출봉이 이렇게 가까이에, 이렇게 크게, 손에 잡힐 듯 보인다는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알고보니 광치기해변을 지나는 올레길은 무려 올레1코스였다!!!

 

제주올레 1코스   < 시흥-광치기올레 >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
오름과 바다가 이어지는 '오름-바당 올레'다. 푸른 들을 지나 말미오름과 알오름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조각보를 펼쳐놓은 듯한 들판과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검은 돌담을 두른 밭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들판의 모습은 색색의 천을 곱게 기워 붙인 한 장의 조각보처럼 아름답다. 종달리 소금밭을 거쳐 시흥리 해안도로를 지나 수마포 해변에서 다시금 성산일출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이 끝나는 광치기 해변의 물빛과 이끼 낀 높낮이가 다른 너럭 바위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 소개에서 발췌

 

원래의 1코스는 시흥에서 시작하여 종달리해변을 지나 광치기해변에서 끝맺음 되지만, 나는 광치기해변에서 시작해서 성산항까지만 걸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충분히 1코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종달리해변까지까지 1코스를 완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렇게 올레길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ㅎㅎ

 

 

 

이토록 가까운 성산일출봉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한 것 처럼 성산일출봉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해변가의 모래가 좀 거무튀튀한 색이었는데, 바다는 진한 파란물결이 일었다. 

해변가에 모래놀이를 하거나 바다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도 잠시 신발을 벗어들고 바다가까이 모래사장을 걸어보았다. 10월이었지만 제주는 마지 여름처럼 뜨거웠고 바닷물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조금 해변을 거닐다 보니 43이라는 숫자가 크게 보였다. 

 

 

터진목 4.3유적지

광치기해변 가까이에 제주 4.3 유적지가 있었다.

 

사실, 나는 4.3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얼핏 티비에서 보았고 대충 들어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자세하게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까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4.3유적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4.3에 대해서 다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갔던 4.3 유적지는 성산읍에서 있었던 학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밝혀진 분들이 이정도이니 미처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제주 4.3 성산읍지역 양민집단학살터

제주 4.3 사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남한정부의 단독투표와 단독수립에 반발해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제주의 주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당한 사건으로, 
제주 4.3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식했던 비극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의 인명피해는 2만 5,000명에서 3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 숫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가량이다.

최근에는 4.3 특별법이 개정되기도 했으며 지난 2005년에는 정부로부터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되기도 했다.

 

급하게 핸드폰으로 4.3 사건을 검색하니 정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고 하니 그것 또한 놀라운 일이면서 끔찍한 일인 것 같다. 

더구나 '학살터'라는 글자를 보이 그 끔찍함이 더욱 다가왔다. 

 

 

설명이 쓰인 글을 읽어보니 더욱 참혹하였다.

젖먹이에서 부터 여든이 넘은 노인까지 마구 찌르고 무참하게 살해하였다니.  갑자기 시원하게 들리던 파도소리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리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저 멋있어 보이기만 했던 성산일출봉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던 해변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보였다.

그 때도 저 바다가, 성산일출봉이 이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겠지. 그들의 울부짖음과 만행들을 모두 지켜보았겠지.. 

유족들이 어떤 마음으로 추모비를 세우고 유적지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었을테지. 그 날의 참담함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누가 알까. 그때의 총과 칼, 그리고 죽창에 찔리고 찢기고 밟혀 죽임을 당한, 그걸 목격한 저 앞바다의 통곡을, 구천을 맴도는 한 맺힌 영혼의 절규를, 그 아픈 역사의 파편들을... 

 

정말.. 글자 하나하나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제라도 4.3에 대해서 공부하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학교다닐때 배우지 않은 건지.. 아니, 배웠는데 생각이 안나는건지.. ㅠㅠ 그렇다면 너무 가볍게 다루었기 때문인가?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많은 학생들, 그리고 나처럼 아직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 널리 알려져야 할 사건임에 분명하다. 

부끄럽거나 아픈 역사도 역사니까.  

과거를 잘 알고 뼈아픈 기억을 되새겨야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길가에 새겨진 빨간 동백꽃잎이 왠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동백꽃잎이 마치 붉은 눈물같은 느낌이었다. 

다음에 제주에 갈때는 4.3평화공원이랑 전시관도 한 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셀프 약속!)

 

 

 

먹먹해진 가슴을 조금은 진정시키고 바다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4.3유적지를 뒤로 하고 다시 성산항을 향해 올레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길에 만난 반가운 올레길표식.  역시 이 표식을 만날때마다 아주 반갑다. 

그렇게 성산항까지 걷는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볍게 걷기에 아주 좋은 코스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라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역사공부까지 할 수 있는 아주 알찬 코스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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